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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생각] 제주 4.3 사건, 평화공원 방문 후기

by 하안태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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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전에는 4.3 평화공원 가기 전 조사한 내용을 작성했었고, 이번에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직접 다녀왔다. 평화공원을 다녀와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공유를 해보려고 한다. 약 40여 년 묻혔던 제주민들의 아픔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지만, 최대한 공감하며 전시를 관람하려고 노력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제주 4.3 평화공원을 걷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가는 길, 소요 시간

제주 4.3 평화공원은 제주시 명림로 430에 위치해 있다. 제주 공항에서 평화공원까지 차로 약 20~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로 이용할 경우에는 대략 50분, 1시간 정도 걸린다고는 나와 있다. 하지만 직접 운전해서 가본 체감상 대략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주변에 차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갔을 때 원래 차가 없을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제주도가 차가 없어서 그런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어쨌든 내가 갔을 때 평화공원 주변에는 차가 없었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평화공원 입장료

평화공원의 입장료는 없다. 무료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추가로 어린 아이도 들어갈 수도 있고, 옛 기억의 고통으로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외지인인 나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양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원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각자가 생각을 정리할 정도로, 인원이 없었다. 주변 도로부터 사람이 없었고, 전시관 안에도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전시를 끝낼 쯤, 어디선가 아이의 뛰는 소리가 들렸고, 곧 한 무리의 가족이 보였다. 그 외 아무도 거기에 있질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오게 하기 위해 입장료를 무료로 받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처음 방문했기에 평소에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그랬다. (박물관 입장료에 관한 할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접어두겠다)

 

평화공원 소요 시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텍스트 하나씩 읽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물론, 아는 내용은 빠르게 넘어가겠지만 지식의 부재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건의 흐름이나 중요 키워드에 관해 어느 정도 조사 후 방문해서 그런지, 관람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0여 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평화 공원에 방문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사전 조사를 추천한다. 대한민국 정부, 미군정, 우익 청년단체, 서북청년단 등, 워낙 많은 단체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었고, 오히려 피해는 민간인으로 넘어갔던 아픈 역사였기 때문이다. 죄 없이 피해를 입은 민간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많은 자료를 공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전시물

수 많은 전시물이 있었고, 아픈 역사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모든 전시물과 텍스트가 나에겐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꼭 방문에서 눈으로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전시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미군의 제주도 메이데이 영상, 두 번째는 사형 판결문이다.

우익 청년단에 의해 발생한 오라리 방화 사건은 미군은 폭도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조작해 영상을 제작했다. 조작한 영상 이름이 바로 "제주의 메이데이"다. 만약 방화 사건의 주 단체였던 우익 청년단에게 죄를 물었다면 앞으로 벌어질 4.3 사건의 끔찍한 이야기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메이데이 / 출처 : 직접 촬영

나는 전시물과 영상을 보면서 어느 한쪽에도 기댈 수 없었던 당시 제주도민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전시물 주변에는 TV 말고 다른 전시물은 없다. 다른 전시물과는 다르게 오직 벽 한 쪽에 TV만 놓여 있다. 그리고 TV에서는 무성 영상인 메이데이가 나온다. 무성 영화는 영상으로 밖에 볼 수 없어 정확한 내용 파악이 불가능하다.

TV와 무성 흑백 영상을 보면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이야기 하지 못하고, 어느 쪽도 기댈 수 없는 제주도민의 마음과 같다 느꼈다. 얼마나 외롭고, 답답했겠는가. 아픈데도 아프다고 이야기 하지 못했다. 국가 단체에 의해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 얼마나 슬펐겠는가.

제주 4.3 평화공원 고등군법회 명령문 / 출처 : 직접 촬영

두 번째는 고등군법회명령문이다. 아래 그림에서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을 살펴보면 1. 사형(한자)로 적힌 것이 보일 것이다. 전시물은 민간임에도 불구하고, 무장대이고 국가에게 반란을 꾀한다는 죄목으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 내린 명령문이다. 이것을 보면 엄청 이상하다. 사건이 발생하면 보통은 수 천에서 살인사건의 경우는 1만 페이지도 조사 페이지가 작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딱 1장이다. 항변과 이유도 너무 간단하다. 항변은 "전 무고인은 각 죄에 관해 무죄를 주장". 이에 관한 판결은 "전 무고인은 각 죄에 관해 유죄"이며 그러니 사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의 일일이 조사를 하지 않고, 모두를 묶어 사형이라 판결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싸잡아서 모두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사형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무장대로 오해해 사로잡힌 것도, 정식적인 재판을 받지 못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것도 억울한데 진짜 문제는 나중에 나타났다. 훗날 무죄를 입증 받기 위해서는 판결문이 꼭 필요한데, 판결문이 어떠한 이유도, 조사 없이 벌어진 불법적인 재판이기 때문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 어려웠었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해서는 4.3 위원회를 특별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판결문을 작성한 당시 판사는, 피해자와 자손에게도 피해를 안겨주고, 낫지 않은 상처를 준 너무 나쁜 사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마지막 길에는 아래 그림처럼 4.3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의 얼굴이 있다. 사진 하나씩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찡하다. 갓난아기를 포함해서 학생이고 성인이고, 노인이든 상관 없었다. 성별도 필요 없었다. 그저, 보이는 족족 죽임을 당했다.

앞으로는 절대 벌어지면 안되는 아픈 역사다. 하지만, 아픈 역사라고 해서 외면하게 된다면 피해자에게는 지속적인 상처를 가하는 것일 테고, 가해자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4.3 사건의 역사를 지우는 것을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다.

제주 4.3 사건의 역사. 너무 늦게 알아버려 아픈 기억이었다.

제주 4.3 평화공원 피해자 사진 / 출처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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