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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지식] 피카소 전시전을 보고 나서

by 하안태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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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얼마 전에 피카소 전시회를 다녀왔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피카소와 미술에 관해서 잘 모른다. 전공하지도 않았고, 취미를 갖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간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에, 배우기 위해서 간 것이다.

 

본론

피카소의 이름

피카소의 본명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에 데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라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다. 본명이 길어진 이유는 아이는 부모의 성을 합치게 된다. 부모도 당신들의 부모로부터 성씨를 받게 된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게 되니 이렇게 이름이 길어지게 되었다. 굳이 정리해서 피카소의 이름을 적어본다면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이다.

파블로 피카소 서명

피카소의 미술

나는 피카소가 이상하게 엉클어진 모습의 미술로만 그려왔다고 생각했다. 입체주의, 신고전주의 학파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미술학에 관한 지식이 없다시피 하니 정확한 단어 선택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상하게 엉켜진 그림만 봐왔다. 그러다 보니 회화 같은 그림은 잘 못 그렸을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이 있었다.

피카소에 관해 조사하는 와중, 회화를 잘 못 그린다는 편견은 정말로 나만의 이상한 편견이었다. 피카소는 이미 16살에 회화의 마스터를 찍었다고 한다. 심지어 미술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미술의 꿈을 접었다고 할 정도였다.

여기 블로그에 보면, 피카소가 9살에 처음 그린 그림이 있다. "투우"라는 제목인데, 그림 자체가 매우 역동적이다. 가히 처음 미술 펜을 잡았는데도 이정도의 퀄리티가 나온 그림을 탄생시킨 것 보면 진짜로 아버지가 꿈을 접을 만했다.

16살에 그린 <과학과 자선단체> 그림을 보면 어린 나이에 이미 회화 쪽으로는 마스터 것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강압적이고 같은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아버지도 학교와 똑같았다. 더 이상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판단한 피카소는 바로, 학교와 집을 나와 버린다.

자신만의 그림을 창조한 그는, 이후에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내가 피카소 전시전을 보러 간 이유였고, 가장 빠르게 보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1951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한반도를 생각하며 그렸다. 막상 그림을 보면 한반도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인지를 설명해줄 상징이 전혀 없다. 혹 침략을 당한 경험이 있는 국가에 전시전이 열린다면 제목만 가려두면 피해자인 쪽이 본인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그림을 보고 어디가 남한 쪽인지, 북한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는 그림이었다. 심지어 가해자도 남한군인지, 북한군인지, 미군인지 중공군인지 알 수 없다. 얼굴을 모조리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통해, 그리고 약 15년 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보인 게르니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죄 없는 민간인만 다치는 참상을 드러내고자 했던 피카소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피카소의 조각품

미술 작품만 1만 3천여 점이 넘는 광대하게 자신의 업적을 세운 피카소는, 그림에서 살짝 눈을 돌려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조각품으로 선택하게 된다. 조각품도 어마어마하게 탄생시키는데 일생에 거쳐 약 700여 점을 창작시켰다고 전해진다. 예술의 전당에서의 조각품은 많지는 않았지만, 피카소의 새로운 면모를 보기에는 충분했다.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여성에 관한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매우 많은 조각품 속에 "여성"이 있었으며, 그 외 각종 동물도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조각품은 피카소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The she-goat'라는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 누가 봐도 염소처럼 생겼다. 맞다, 염소다. 조각품 섹션이 떡하니 염소가 있어 이것이 무슨 의미인 줄 잘 몰랐다. 이것을 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이것이 왜 사랑받는지도 몰랐다.

조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염소처럼 잘 만든 것 같지만 왜 사랑받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덤덤하게 임신한 염소에 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염소를 만들 때 피카소는 주변의 골동품을 주워 만들었다고 한다. 염소는 고전부터 다산과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피카소가 임신한 염소를 제작한 이유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새로운 여성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여성과 아이에게 다산과 행복을 기원하는 선물? 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

피카소를 생각하면 전 세계의 미술 궤를 바꾸었던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점은 매우 얕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시회를 다녀와서 깨닫게 되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점"을 빼놓고서 분명 그는 자신의 표현 방법에 관해 끊임없이 사고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지식의 얕음으로 그의 큰 뜻은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스페인을 가야지만 볼 수 있었던 피카소의 여러 작품을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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