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해도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들, 세상은 절대 알아주지 않는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합격점수만 넘으면 100점과 60점은 동일하게 취급받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잘못된 세상의 환경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을 해본다면 빨리 빨리의 문화인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선 아무래도 과정보다는 결과가 좋아야 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때론 자신의 계획으로 지칠 때가 많다. 세웠던 계획은 딱 맞아떨어졌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염려했던 부분은 언제나 염려했던 곳에서 탄생한다. 아무리 이중, 삼중의 계획을 세워놔도 그때뿐, 실제로는 계획이 맞지 않는다.
답답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잘 털어놓지 못한다. 부정적인 기운은 부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민도 한번, 두 번 이야기를 해야 들어주지, 만날 때마다 곡소리를 하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만나자는 연락에 한숨 쉬고 '알겠다'고 답하게 된다. 부정적인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활발히 뇌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다. 친구의 나쁜 기운에게서 빨리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친구의 고민을 또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나쁜 기운이 스며드는데도, 친구의 우정이 무엇인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곤란한 상황일 때 잘 써먹는 말이 있다. "힘내라"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진심 어린 친구의 고민을 마치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인 듯 굉장히 몰입하고 진짜로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서 최고의 방법을 짜내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내 인맥을 활용해서 친구가 빨리 고민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준다.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 얼마나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가. 나 역시도 그랬다. 해가 지는 저녁에 만나,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아침 햇살이 밝게 비춘 날도 수두룩하다. 피곤을 이끌고 회사를 가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도 했다. 심지어 시험 기간인데도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시험공부를 잠시 접어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힘내라" 였다.
그런데 어느 날, "힘내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힘내라"는 말속에 진짜로 친구가 힘냈으면 하는 소망, 빨리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도와달라는 소망, 이제 그만 이야기하라는 소망 등이 합쳐서 나온 말이었다. 비율은 각기 다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조차, 어렵게 이야기 꺼내는 친구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마 말하는 사람도 나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표정에서 감추지 못하는 성격 탓에 기분이 그대로 얼굴에 반영된다. 그런데도 나에게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그저 오랜 시간 동안 붙어 있을 수 있는 나의 진득한 성격 때문이었다. "힘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에게는 그저 오랜 시간이 함께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는 적어도 "힘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힘내라"라는 굉장히 용기 없고,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이야기이다. 그럼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는 난 무슨 말을 할까?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팔짱 끼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만 몇 번 끄덕거려 준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나도 친구의 고민을 함께 걱정하고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알 방법도 없는 일에 용기 없게, 잔인하게 그저, "힘내라"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친구의 고민은 친구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으로 가져올 수도 없고, 가져와서도 안 된다. 말에게 물가에 데리고 가 줄 수는 있겠지만, 물은 본인이 직접 먹어야 한다.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친구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그래서 고민이 있지 않겠는가?
단, 친구가 만약 죽네, 안 죽네 라는 이야기 즉,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때는 "힘내라"는 말보다는 시원하게 부모님을 건드려 준다.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키웠을 부모님을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그때는 꺼내긴 한다.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무조건 들어준다. 그리고 밤새도록 들어주었던 나의 패턴을 바꾸었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는 무조건 털고 일어난다. 고민은 고민해봤자 고민밖에 안 된다. 즉, 단번에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나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해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나를 만나면서까지 이야기한다? 결국 오랜 시간 이야기를 털어놓아 봤자 지금 자리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과 함께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가진 친구에게는 집으로 간다. 같이 술도 한잔하고, 게임도 하고, 어렸을 때 놀았던 방식대로 뛰어놀기도 한다.
나의 지금까지의 행동이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는 못 하겠다.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힘내라"는 말에 담긴 속성을 알지 못하고 남발하는 사람을 봤고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힘내라"는 말은 무거운 말이다. 책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친구의 고민에 무조건 힘내라는 표현을 지양하고, 그들의 고민을 털어놓는 진짜 이유를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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