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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생각] 시시포스에게서 배우는 삶

by 하안태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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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인으로 유명한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를 제우스가 납치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신의 힘을 사용하여 납치해서 데리고 갔는데 그때 어디선가 시시포스가 납치 장면을 보고 있었다. 코린토스의 창업 군주인 시시포스는 아소포스에게 갔다. 코린토스는 물이 부족해 가뭄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딸의 행방을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가, 가뭄을 해결해주면 딸의 행방을 알려준다고 했다.

제우스는 고발한 시시포스에게 노여움을 표현했다. (사실, 잘못을 고발한 사람이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잘못은 제우스가 한 것 아닌가…) 죽음의 신이었던 타나토스에게 명령하여 시시포스를 저승으로 끌고 가라고 했다. 창업 군주란 소리만 들어도 알겠지만, 시시포스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승의 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시시포스는 자신을 납치하려는 타나토스를 힘과 꾀를 동원하여 감옥에 가두어 버리고 이승으로 탈출했다. 죽음의 신이 없으니 저승의 총괄 책임자였던 하데스와 전쟁의 신이 당황했다. 하데스는 죽음이 와야 저승 세계가 운영되는데 그러지 못하니 저승 운영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아레는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좀비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닌가. 결국 전쟁이 지속하고 신이었던 아레스조차 힘에 버거워했었다. 하데스와 아레스는 타나토스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고 시시포스가 벌인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둘은 제우스에게 시시포스를 처벌하라는 항의를 했다. 하지만 하데스까지 꾀로 속이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냈던 시시포스는 제우스는 더 용납할 수 없었다.

제우스를 고발하고 타나토스를 감옥에 가두고 또한 다른 신들까지 속였던 시시포스는 천벌을 받게 된다. 무거운 돌을 산 정상까지 옮기는 벌인데, 힘들게 정상에 올려놓으면 돌은 다시 굴러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 다시 정상에 옮겨야 하는데 이러한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관을 통틀어 힘이 세다고 평가받는 타나토스까지 제압한 시시포스라 신의 노여움을 산 것에 비해 매우 약한 천벌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우스가 내린 천벌은 단순히 '힘을 쓴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생은 반복이라고 하지만, 의미 없는 반복은 허무하다.

바로, 의미 없는 목적의 반복이다. 정상까지 옮기면 다시 제자리로 굴러간다. 이를 다시 정상까지 옮겨야 하는데,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정상에 돌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왜냐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에게 내린 천벌은 의미 없는, 목적 없는 삶의 지속에 있다.

시시포스는 잘못을 저질러 천벌로 의미 없고 목적 없는 삶을 부여받았다. 반대로 우리는 신에게 천벌을 지어서 의미 없고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떠한 결과도 없이 어떠한 기쁨도 맛보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과연 누가 내린 천벌이란 말인가. 성공의 길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신에게 귀여움을 받는 사람인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신의 결정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성공의 길로 안내하는 신도, 목적 없게 삶을 허비하도록 안내하는 신도 바로 자신에게서 나온다.

목적 없이 사는 삶은 천벌이다. 우리는 왜 천벌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은 반복될 것이고, 이것은 어떠한 기쁨까지 다 앗아가는 천벌이다. 그러니 우리는 시시포스처럼 살지 말고, 늘 감사하며 기쁨을 맛보고 결과를 통해서 늘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의미하게 우리의 삶을 정상에 돌을 올려놓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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